
1983년 10월 9일, 미국 대통령의 순방 일정에 맞춰 갑자기 추가된 버마 방문. 그리고 아웅 산 묘소에서 폭발한 폭탄. 17명의 한국 인사와 4명의 버마 인사가 희생된 이 사건을 조선의 소행으로 단정 지은 공식 결론에 대해, 저자 강진욱은 방대한 사료와 논리적 추론을 통해전두환 정권과 미국이 기획한 자작테러라는 충격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초판 출간 이후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최병효 전 노르웨이 대사)가 이 사건을 다시 조선의 소행으로 규정하자, 저자는 이를 반박하기 위해 34회 연재글을 작성했고, 이를 62개의 파트로 재구성한 것이 바로 이 증보판이다.음모론이 아니라 사실에 기반한 반론—그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40여 년간 굳어진 통념을 뒤흔드는 결정적 탐사보도. 사료와 논리로 무장한 반론의 가치.
저자는 음모론이 아니다. 오히려 기존 결론을 음모론으로 규정하는 통념을 방대한 사료와 공식 문서를 통해 논파한다. 〈초강 이범석 평전〉과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의 허점을 하나하나 지적한다.
전두환의 “비선(秘線)”, 이범석 외무장관의 불안, 예정에 없던 버마 방문 일정의 갑작스러운 추가, CIA의 안기부 수뇌부 호출—공식 보고서가 담지 못한 이야기를 낱낱이 파헤친다.
2017년 초판 이후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가 버마 사건을 다시 조선의 소행으로 규정하자, 저자는 인터넷 연재 34회분을 62개 파트로 재구성했다. 초판 독자도 새로 읽을 가치가 있다.
각 장의 핵심 내용을 탭으로 살펴보세요.

2017년 초판 이후 버마 사건 관련 서적이 나왔으나, 모두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재규정했다.
10개 장, 62개 소제목으로 구성된 증보판의 전체 목차입니다.
‘1983 버마’를 폄훼하는 사람들
‘통일뉴스’ 2025.11.29


연합뉴스 민족뉴스취재본부 북한부·남북관계부에서 7년간 근무하며 분단 체제의 모순을 체감했다. 1983년 버마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이 일어난 해에 대학에 입학하고, 김현희 사건이 일어난 해에 졸업한 것이 이 땅의 모순에 눈뜨는 계기가 되었다.
사건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었던 언론계 대선배를 북한부 기자 시절 찾아갔고, 30여 년이 지나 이 사건에 대해 책을 내게 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저자의 추적은 개인적 호기심을 넘어, 국가가 영원히 공개하지 않으려 했던 진실의 편린을 독자 앞에 끌어내린다.
공식 보고서가 답하지 않은 의혹들, 읽으면서 스스로 판단하라
원래 외무부의 순방 계획안에는 버마가 없었으나, 1983년 5월 20일 전두환이 직접 ‘버마를 넣으라’고 지시하였다. 이것은 우연한 일정 변경이었을까, 아니면 미리 짜인 시나리오의 일부였을까?
전두환이 버마 방문을 지시하기 사흘 전인 5월 17일, 버마의 치안과 보안을 책임지던 군 정보국장 틴 우 중장이 숙청되었다. 이로 인해 버마 보안 체계가 무력화된 상태에서 한국 경호원들이 보안을 도맡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테러를 위한 ‘보안 공백’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가?
공식 보고서는 버마 측 거부로 묘소 천장을 점검하지 못했다고 기록했으나, 한국 경호팀은 사건 사흘 전인 10월 6일 이미 지붕 위에 올라가 현장을 점검하였다. 경호팀은 정말 폭탄을 발견하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발견하지 않은 것인가?
현장에는 터지지 않은 클레이모어가 남아 있었으며, 그 폭약 겉면에는 ‘한국화약’이라는 제조사 이름이 양각되어 있었다. 조선 공작원이 왜 한국산 폭약을 들고 버마의 성소에 나타났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이범석 장관은 외무부 예산에서 20만 달러를 인출해 지참했으나 사건 후 이 거액은 행방불명되었다. 조사를 맡았던 감사관은 영전하였고 감사는 중단되었다. 이 자금은 정말 증발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공작 자금으로 쓰인 것인가?
사건 발생 열흘 뒤인 10월 19일 작성된 CIA 비밀문건에는 범인 강민철의 자백이 이미 기정사실로 기록되어 있었다. 당시 강민철은 서울에서 왔다고 주장하던 시점이었다. CIA는 수사 결과를 미리 알고 시나리오를 직접 쓴 것인가?
사건 직전 단행된 여러 차례의 개각을 통해 아웅 산 묘소에 도열할 장·차관급 인사들이 대거 교체되었다. 희생된 이들은 대부분 정권의 비실세 전문가들이었으며 정작 실세들은 화를 면하였다. 이것은 우연한 배정이었을까, 아니면 치밀하게 짜인 살생부였을까?
서울에서 왔다고 주장하던 강민철은 안기부 간부들이 급파된 직후 태도를 바꾼다. 안기부 간부들은 “너 어떻게든 살아야 할 것 아니냐”며 강민철을 회유하였고, 그 직후 그는 진술을 번복하였다. 강민철의 자백은 진실인가, 아니면 거래인가?
머리글 일부를 공개합니다. 전권의 논지와 증보판의 의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위 두 책 모두 버마 사건을 조선의 소행이라고 재규정했다. 이 사건이 전두환네와 미국의 조작극임을 규명한 『1983 버마』 출간이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모양이다. 매우 유감스럽다.”
2017년 출간된 초판 『1983 버마』는 전두환 정권과 미국이 합작한 자작테러라는 결론을 제시했다. 이후 출간된 두 권의 책이 이를 음모론으로 폄훼하자, 저자는 34회 연재글을 통해 사료에 기반한 반론을 전개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증보판이다.
특히, 당시 외무부 실무자이자 ‘비공식 수행원’으로서 버마까지 따라갔던 최병효 전 노르웨이 대사마저 자신의 소중한 경험의 의미를 되새기지 못한 채 전두환네 안기부 보고서를 추인한 것은 더더욱 유감스럽다. 그가 말하는 “진실”은 전두환네가 정리한 공식 결론 속에 갇힌 진실이었다.
그가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제기한 의문은 2가지였다. ‘① 왜 예정에 없던 버마 방문 일정이 갑자기 추가됐나. ② 왜 현지 안전 점검을 제대로 못 해 아웅 산 묘소 천장에 설치된 폭탄을 발견하지 못했나.’ 이들 질문은 진상 규명을 위해 반드시 들여다봐야 할 문제다.
전두환이 버마에 가겠다고 말한 바로 그 시점에 버마에서는 난데없이 국가정보국장이 숙청돼 버마의 치안과 보안 체계가 마비됐고, 전두환네 경호원들이 현장 점검 및 보안을 도맡았다. 조선 공작원들이 묘소 천장에 폭탄을 설치하기 위해 현지 안가에서 나왔다는 날(10.6)은 안기부 해외공작국장이 버마에 간 날이었다.
사건 발생 시각에 안기부 해외담당차장 박세직이 미 CIA 서울지부장 및 보안사령관과 함께 안기부 테니스코트에 있다 제일 먼저 보고를 받고, 그 다음날 ‘진상조사단’을 이끌고 버마로 날아갔으며, 귀국한 뒤 “간첩을 잡아 시인을 받으라는 전두환의 명령에 따라” 부산 다대포 앞바다로 조선의 무장공비들을(?) 불러들이는 작전을 벌였다. 이런 사실들은 사건의 배후가 전두환네 한국임을, 또한 전두환 정권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미국임을 반증하는 정황들이다.
전두환 정권 시기에만 무려 4건의 국가조작테러가 자행됐다. 버마 사건의 진상에 접근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시작 단계에 머물고 있다.

아웅산 묘소 테러의 내막
전두환 정권 7년은 국가조작테러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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